이름: 한억만 (ponamch@hanmail.net)
홈페이지: http://cafe.daum.net/peterhan
말 없는 가족...  

말 없는 가족 예전에 어느 초등학생이 쓴 시다. ‘우리 집엔 강아지도 있고 엄마도 있고 동생도 있다.’ 마지막이 반전이다, ‘대체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엔 늦게 오고, 휴일엔 자는 모습만 보아왔던 아이에게는 아빠가 집에 있어야 할 이유를 알 턱이 없다. 현대인은 늘 시간에 쫓긴다. 집에서도 '혼밥'하고, 각자 방에서 할 일을 하느라 가족 간에도 애들처럼 카톡으로 대화할 때도 있다. 전통적인 가족 의미는 이미 퇴색되어 무늬만 가족일 뿐 가족보다 오히려 반려동물을 더 식구로 여긴다. 시간 부족과 개인화 추세로 혼자 지내는 것이 더 편해지면서 이젠 식구라는 단어가 무색하기에 아이가 어찌 아빠의 존재 의미를 알겠는가. 삶은 바야흐로 전쟁이다. 문명이 진보될수록 서로를 더 적으로 대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구조에서 낙오되지 않으려 애 쓰는 동안 먼저 나타난 후유증은 단절된 가족관계에서 드러났다. 머리가 희어지면서 본인이 이웃의 존재를 망각하고 살았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가족 공동체에서조차 아빠를 이방인으로 여기는데, 주변에서 어찌 진실로 의지하고 사랑할 사람이 있겠는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가 없다. 현대사회의 변화만큼 사라져가는 동질감의 시대에서 자아의 모습이란 투명 인간 같다. 그들은 만남의 의미도 모르지만 나눔의 기쁨은 더욱 요원하고 살아있음에도 무시되는 존재가 되어간다. 오래 전 미국에서 조승희 총기 사건이 나자 그 원인을 정신분열증, 게임광, 자폐증이라고 했다. 하지만 승희에게 본질적인 문제는 ‘선택적 무언증’이었다. 이것은 평소 불안과 반항심으로 인해 특정한 상황을 만나면 말을 하지 않는 불안장애의 일종이다. 그에게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났을까. 그의 부모에 대해 이웃들은 모두가 긍정적이었다. 다만 그의 학과장은 ‘Mr.조는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야구 모자를 눌러썼었는데, 선글라스 너머로 울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사건의 발단은 ‘무언증’이었다. 평소 말이 없다는 것은 조승희처럼 불안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캠퍼스가 아니라 가정에서 유독 ‘무언증’ 환자처럼 가족과 담을 쌓고 있으니 별의별 일들이 터지고 있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현대인의 비극이 되어버린 서로 말하지 않는 가족은 워라밸(Work-life balance) 불균형을 경험하면서 겪게 되는 첫 번째 애로사항을 대화부족으로 꼽았다. 가족끼리 대화가 줄어들지만 그 중에서도 아버지가 가장 심각하다. 이상하게도 아버지와 대화하려면, 어느 덧 자아도취에 빠져 세상을 심판하면서 아버지 혼자서 결론을 맺어 버린다. 아버지가 기분 좋으면 상대도 기분 좋은 줄 착각하고 이야기는 끝을 맺질 못한다. 이런 자세로 대화를 나누니 가족임에도 말이 통하지 않기에 마치 고구마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니 어찌 대화를 이어 가겠는가. 수컷은 본능적으로 먹이활동과 영역 지키기를 담당했듯이, 아버지는 가족을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보호해야 했기에 정작 본인의 안위에는 호사로 여길 뿐이다. 그런 아버지에게 인생의 관점은 오로지 돈에 있었다. 특히 자식과 인생의 가치를 논할 때도 ‘기-승-전-돈’이다. 아버지는 모른다. 이미 그런 생존본능의 시대를 지나 매슬로 말을 빌리지 않아도 존중과 자아실현이 우선되어야 함을 모르기에 가족 간에 대화를 어렵게 만들었던 것이다. 특별히 자수성가하여 성취감이 가득 찬 아버지일수록 일방통행 되기가 쉽다. 아무리 내 아버지라도 한 평생 그렇게 살아오신 당신의 가치관을 가족이 어찌하겠는가. 일과·가정을 지키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물론 이미 고용노동부에서도 제시한 여러 기준들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우선되어야 일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로 찾아야 한다. 지금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아니 어디로 가야하는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그런 후 나는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행여 바보같이 악한 세상 탓 하는 동안 자신에게 나타나는 부정적 증상을 보지 못하고 있다. 가는 세월 일방통행 인생을 사느라 이웃을 얼마나 힘들게 했던가. 인간은 경제적이고 정치적 존재 이전에 언어적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말을 못하면 병이 나고 사는 게 힘들고 재미가 없다. 우리 집 문제는 돈이 아니라 항상 대화의 담에 있었다. 사람은 돈이 전부인 것 같지만 대화가 통하면 내 돈을 다 줘도 아깝지가 않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떠돌이 생활 속에서도 자녀교육만은 철저했다. 질문과 대화의 기적이라 할 수 있는 유대인교육법은 체벌이나 잔소리 대신에 대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칭찬으로 키운다. 부모는 자녀 스스로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역사나 자연, 사람과 인생 등을 토로하므로 지적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영감을 불어넣는다. 덕분에 유대인들은 누굴 만나든 인생 관심사를 공유하며 대화를 이끌어간다. 대화의 기본은 경청이다. 끝까지 말을 들으면 소통의 틈이 생긴다. 들을수록 나도 모르게 ‘모든 사람이 내 생각과 같아야 한다.’는 욕심도 저절로 내려놓게 된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상대의 말을 듣다보면 내 안의 편견이 사라지면서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이렇게 상대를 존중하면 대화가 풀린다. 더불어 내 약함을 상대가 풀어줄 수 있고, 상대의 모자람을 내가 풀어줄 수 있게 되면서 진정한 인생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다.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듯이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가슴을 열고 귀로 듣고 마음의 귀로 듣다보면 시공간도 초월하는 사건들이 집 안에 좋은 기운을 흐르게 하여 행복한 가정을 만든다. 2019년 11월 10일 강릉에서 피러한 한억만 올립니다. 사진허락작가:하누리님, 이요셉님
^경포호수^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