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김석조 (tjrwh7033@hamail.net)
제61주년 4,19혁명기념일  
4,19혁명 기념일
4·19 혁명 정신을 기리기 위한 날이다. 4·19 혁명 희생자 영령을 추모하고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여 정의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매년 4월 19일을 기념일로 정했다. 1973년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 당시 명칭은 ‘4·19의거 기념일’이었으며 1994년 ‘4·19혁명 기념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4·19 혁명 기념일에는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기념 행사를 진행한다.

4·19 혁명은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들이 일으킨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이다.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 일어난 대규모 선거 부정행위(3·15 부정선거)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개헌을 거듭하며 정권을 이어갔다. 1950년대 후반 이승만 정권의 독재 체제에 관한 불만이 커지자 이승만과 자유당은 정권 유지를 위해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감행하였다.
선거일인 1960년 3월 15일 경상남도 마산에서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학생과 시민들이 규탄 시위(3·15 의거)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발포하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다수의 시민과 학생들이 감금되었다. 4월 11일 1차 발포 때 행방불명이었던 고등학생 김주열의 시체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으로 떠오르면서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4월 18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고려대 학생들을 이승만 정권이 동원한 폭력배들이 구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4월 19일 서울 지역 대학생들이 일제히 궐기하여 시가행진을 진행했으며 고등학생과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인원이 급속히 늘어났다. 일부 시위대는 시경찰국과 내무부 등을 공격하기도 했으며 대통령 관저로 향하던 무리도 있었다.

경찰은 시위 진압 명목으로 시위대에 실탄을 발포했으며 그로 인해 186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6천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시위는 부정선거 규탄에서 독재정권 타도로 발전했다. 이승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사태를 모면하려 했으나 4월 26일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4·19 혁명 정신은 이후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으며 1987년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에는 대한민국은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역사는 후손들이 꼭 기억해야 합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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